결이 다른 순한 맛 성장드라마
미드 중에 유포리아가 있다. 시즌 2가 스트리밍됐고, 올해 에미상 여주주연상까지 젠데이아 콜먼 배우가 수상을 했다. 10대의 성장드라마이다. 성장을 하는지는 의문스럽다. 19금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만큼 내용은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. 정말 실제 미국 청소년들이 요새 저러한가라는 의구심이 계속 생긴다. 마약중독, 불법 총기, 살인, 사랑, 성정체성, 우정, 부모와의 갈등 등의 이슈가 정말 매회 쏟아진다. 학교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공부와 학업만 빼고 다 다뤄지는 것 같다. 회를 거듭할수록 주인공 루의 상태는 악화되고 위태롭다. 어디가 밑바닥인지 모르겠다. 그녀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이 죄다 고통스러워한다. 청소년이 볼 수 없는 청소년 성장 드라마다. 매운맛 그 자체다. 헐 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. 그리고 다음 시즌을 기다린다. 제발 루가 살아남기를 빌면서.
영화 레이디 버드는 정반대의 순한 맛 성장드라마다. 유포리아에 비한다면 정말 너무 순하다. 잔잔하다. 조용한 바다의 해질녘 파도 같다. 그냥 천천히 밀려갔다 다시 돌아온다. 하지만 어느 틈에 해변은 물에 잠기고 그녀는 새로운 삶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간다. 부재인 fly away home 처럼 집을 떠나서 말이다. 미국은 보통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집에서 나가는데 요새는 그렇지 못한 10대들이 많다고 하니 주인공이 뉴욕으로 떠나게 되는 것 자체가 성장을 상징하게 되는 것 같다.
할퀴어진 해변은 바다로 뒤덮이고
주인공 레이디 버드는 사실 실제 이름이 따로 있다. 크리스틴이 실제 이름이다. 하지만 스스로를 레이디 버드라고 명명한다. 미국판 중2병 같기도 하다. 이 시기의 10대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이 굉장히 중요하다. 그래서 스스로의 이름이 필요했던 것 같다. 레이디라고 붙이는 것은 보통 귀족이나 왕족들 앞에 붙이는 것 같은데 그만큼 내가 소중하고 귀중하다는 의미일 것 같다. 또래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 또한 중요한 변수다. 누구와 베프를 할 것인지, 남자 친구를 위해서 친구를 바꾸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지도 판단해야 한다. 첫사랑도 중요하고 첫 경험도 중요하다. 하지만 아직 어리다. 그래서 엄마와의 관계도 중요하다. 엄마와는 어떤 부분에서는 잘 맞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남보다도 못하다. 특히 레이디 버드에서는 딸과 엄마와의 인터랙션이 주가 되었던 것 같다. 엄마는 현실적이다.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살고 싶은 집을 구경하는 것이 즐거운 일 중 하나일 정도로 낡은 집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다. 하지만 레이디 버드와 감정적인 공감으로 엮여있는 부분도 있어서 같이 듣던 오디오북(테이프 형태의)을 듣다가도 동시에 울음을 터뜨린다. 새 집 구경도 같이 한다. 그러나 한편으로 둘은 너무 멀다. 레이디 버드는 집을 떠나고 싶어 하고 엄마는 그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면박을 준다. 하지만 끝내 떠나는 딸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. 레이디 버드는 묻는다. 나를 사랑하냐고. 사랑한다고. 나를 좋아하냐고. 이 질문은 비슷하면서도 몹시 다른 것 같기도 하다. 둘 사이에는 교집합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결이 다르다. 모성애는 사랑이지만 오롯이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. 하지만 사랑은 좋아하는 감정까지 다 포괄하는 것 아닐까. 그만큼 모녀의 관계는 어렵고 다채롭다. 갑자기 웃었다가 울어버리고 성질을 부렸다가 또 미안하다며 쩔쩔맨다. 엄마는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를 응원하면서도 잘못된 길로 갈까 봐 전전긍긍이다. 딸은 늘 혼내기만 하는 엄마가 서운하다. 하지만 밀려오고 밀려가면 해안을 할퀴던 파도는 결국 바다가 된다. 그 둘은 어느 틈에 전보다 더 돈독해지고 단단해진 느낌이다.
새크라멘토는 대체 어디일까.
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도시인 것 같다. 네이버에 의하면 군청소재지라고 하는 걸 보면 시골 마을이다. 10대 소녀에게 그곳은 얼마나 답답하고 도망쳐 나오고 싶은 곳이었을지 짐작이 된다. 탈출은 대학 진학 밖에 없었을 것이다. 뉴욕은 그녀에게 답을 줬을까. 취하고 토하고 울면서 그녀는 또 새크라멘토를 그 마음의 고향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 같다. 엄마를 그리워하며. 그리고 티모시 살라메가 까칠한 남자 친구로 나온다. 작은 아씨들 이후 또 한 번 만남을 가진 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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